도로명 유래

도로명한자설명
개화동길開花洞길① 강서구 방화동 621-24번지(김포공항 입구)에서 개화교를 거쳐 강서구 개화동 165-1번지(행주대교 남단)에 이르는 폭 30m, 길이 4,160m의 6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지나는 개화동 동명에서 유래 ③ 1981년 1월 21일 서울특별시공고 제14호에 의해 제정된 개화로에서 비롯되어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개화동길로 변경되었다.
공항로空港路① 강서구 염창동 260-15번지(양화교)에서 등촌동을 거쳐 방화동 621번지(김포공함 정문)에 이르는 폭 40m, 길이 7,100m의 8차선 도로 ② 이 길이 김포공항과 서울의 도심을 잇는 길인 데서 유래. ③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에 의해 처음 공항로로 이름 붙여졌다.
광나룻길① 성동구 성수동 685번지(응봉로)에서 어린이대공원을 거쳐 올림픽대교 남단에 이르는 폭 30m, 길이 7,300m의 6차선도로 ② 이 길의 종점인 광진교가 있는 곳이 옛날 광나루였던 데서 유래 ③ 이 길은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 의해 광장로로 이름 붙여졌으며, 이를 1972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공고 제268호로 폭 15m이상 4차선을 대상으로 가로명을 제정 또는 구간 조정하였다. 이때 광장로의 중간에 어린이대공원이 건설됨에 따라 새싹길을 제정하면서 구간을 조정하였다. 즉 성동교 남단에서 광진교에 이르는 구간을 새싹길로 하고, 을지로7가에서 성동교 남단까지를 왕십리로 하였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종점을 광진교 북단에서 남단으로 변경하여 가로명을 새싹길에서 광나룻길로 변경하였다.
노들길① 동작구 본동 258-1번지(한강대교남단)에서 양화대교 남단을 거쳐 영등포구 양화동 산 5-2번지(양화교)에 이르는 폭 20~50m, 길이 8,500m의 4차선 도로. ② 이 길의 기점인 노량진의 옛 이름인 노들나루에서 유래 ③ 1972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공고 제268호에 의해 개발지역의 간선도로를 정비한다는 원칙에 의해 준공연도에 따라 부여하였던 강변도로의 명칭을 한강의 남·북단으로 구분함에 따라 붙여진 강남4로에서 비롯되었으며, 1986년 3월 13일 노들길로 가로명이 변경되었다.
대방로大方路① 동작구 대방동 88번지(여의교 남단)에서 서울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영등포구 대림동 948-1번지(강남성심병원)에 이르는 폭 25~35m, 길이 3,200m의 4~6차선 도로 ② 이 길의 동쪽에 있는 동작구 대방동 동명에서 유래 ③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에 의해 제정된 감찬로(邯贊路)에서 비롯되어 1972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공고 제268호에 의해 대방로로 변경되었다.
동1로東1路① 중랑구 상봉동 117-5번지에서 묵동교를 거쳐 도봉구 도봉동 시계에 이르는 폭 35m, 길이 10,500m의 6~8차선 도로 ② 중랑천 동쪽을 따라 간선도로가 개설되면서 의정부 방면에서 서울 동부지역으로 진입하는 초입 도로인 데서 유래 ③ 이 길은 1972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공고 제268호에 의해 한양천도 578주년 기념일을 맞아 59개 가로명 제정 공포할때 동1로로 이름 붙여졌다.
동2로東2路① 중랑구 상봉동 118-25번지에서 군자교 남단을 거쳐 강남구 청담동 129번지(영동대교 남단)에 이르는 폭 30m, 길이 8,100m의 6차선 도로 ② 중랑천 동쪽을 따라 간선도로가 개설되면서 의정부 방면에서 서울 동부지역으로의 진입로인 동1로에 연결된 데서 유래 ③ 이 길은 1972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공고 제268호에 의해 한양천도 578주년 기념일을 맞아 59개 가로명 제정 공포할때 동2로로 이름 붙여졌다.
동부간선도로東部幹線道路① 노원구 상계동 1201-4번지(상계동 시계)에서 장지동 744번지(장지동 시계)에 이르는 폭 26m, 길이 33,000m의 6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서울 동쪽의 간선도로인 데서 유래 ③ 이 길은 1993년 7월 23일 처음 동부간선도로로 이름 붙여졌다.
둔촌로遁村路① 둔촌동 522-6번지(강동대로)에서 길동사거리를 거쳐 강동구 암사동 351-2번지(고덕뒷길)에 이르는 폭 25~50m, 길이 4,280m의 6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지나는 강동구 둔촌동 동명에서 유래 ③ 이 길은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처음 둔촌로로 이름 붙여졌다.
마포로麻浦路① 마포구 아현동 85번지(아현삼거리)에서 공덕동로터리를 거쳐 영등포구 여의도동 20번지(마포대교 남단)에 이르는 폭 40~50m, 길이 4,100m의 8차선 도로 ② 이 길이 마포구의 가장 중심도로이므로 마포구 구명에서 유래 ③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에 의해 처음 이름 붙여졌다.
만리재길萬里재길① 중구 만리동1가 62-7번지(서부역)에서 마포구 공덕동 255-9번지(공덕동로터리)에 이르는 폭 28m, 길이 2,000m의 6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조선시대 石戰으로 유명한 만리재(만리현)을 지나는 데서 유래 ③ 1972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공고 제268호에 의해 공덕동로터리에서 만리동을 경유하여 서부역에 이르는 폭 28m, 길이 2,200m의 만리로로 제정되었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옛 지명인 만리재길로 가로명을 변경하고, 기점과 종점은 반대로 조정되었는데 당시 기점은 만리동1가 22번지 였다. 그 후 기점을 만리동1가 62-7번지로 조정하면서 200m가 단축되었다.
무교동길武橋洞길① 종로구 서린동 136번지(종로1가)에서 대한체육회관 앞을 거쳐 중구 태평로1가 31번지(서울시청)에 이르는 폭 20m, 길이 400m의 4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지나는 중구 무교동 동명에서 유래되었으며, 무교는 남산에서 흘러 청계천으로 합류되는 창동천 위에 있던 다리이다. 그리고 무교는 조선시대 무기를 만드는 군기사(軍器寺)가 인근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③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처음으로 가로명이 붙여졌다.
반포로盤浦路① 중구 충무로1가 52-5번지에서 남산3호터널·반포대교를 지나 서초동 1464-30번지(남부순환로)에 이르는 폭 35~40m, 길이 9,650m의 8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서초구 반포동을 지나고 반포대교가 한강의 남북을 연결시켜주는 데서 유래 ③ 1976년 6월 26일 방사7호선을 반포대로로 개정하였는데 당시 반포대로는 중구 회현동 12번지에서 서초동 산127번지까지 길이 9,500m를 구간으로 남산3호터널과 잠수교를 경유하였다. 1984년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반포대로를 반포로로 개정하고 경유지를 반포대교로 하였다.
배오개길① 종로4가 14번지(종로4가)에서 중구청을 거쳐 중구 충무로5가 19-7번지(동국대학교 입구)에 이르는 폭 25m, 길이 950m의 4차선 도로② 이 길은 종로구 인의동 112번지 동쪽, 현 종로4가 네거리에 배오개(梨峴)가 있던 데서 유래 ③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로 37개 가로명을 제정할 때 혜화동로터리~창경궁~주교동~동국대 앞까지 2.7km 구간을 창경로(昌慶路)라고 하였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로 도심구간의 세분화와 교통 흐름을 감안하여 창경로를 종로4가를 기준으로 창경궁로와 배오개길로 구분하였다.
사평로砂平路① 서초구 방배동 750-20번지(이수교)에서 반포동을 거쳐 반포동 748-16번지(강남대로)에 이르는 폭 40m, 길이 3,800m의 8차선 도로 ② 이 일대가 한강 남안에 위치하여 범람으로 퇴적한 백사장이 넓어 사평원(砂平原, 모래벌)이라고 한 데서 유래 ③ 이 길은 1966년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에 의해 46개 가로명을 처음 제정할 때 이름 붙여진 동작로(銅雀路)에서 비롯되었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교통 흐름을 감안하여 동작로는 사평로와 현충로(顯忠路)로 구간 세분하여 사평로가 처음으로 이름 붙여졌다.
삼일로三一路① 종로구 운니동 114-8번지(덕성학원)에서 청계2가를 거쳐 중구 충무로2가 60-3번지(세종호텔)에 이르는 폭 40m, 길이 1,800m의 8차선 도로 ② 이 길가에 있는 탑골공원에서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을 한 뒤 전국에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여 만세운동을 벌인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③ 18세기 겸재 정선의 <도성대지도>에 일부만 그려져 있고, 19세기 김정호가 그린 <수선전도>와 1900년 <한성부지도>를 보면 길이 나 있다. 이 길은 1912년 11월 6일 조선총독부고시 제78호로 탑골공원광장~충무로간 폭 14.5m를 정하여 1917년 길이 373m로 탑골공원~을지로~저동1가~충무로3가 구간으로 개통되었다. 1952년 3월 25일 내무부고시 제23호로 을지로2가~낙원동간 850m를 폭 15m로 고시하였으며, 그 후 이 길이 크게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로제정되었는데, 당시는 충무로2가~중앙극장~안국동로터리(견지동 7번지) 구간이었으며, 1984년 11월 7일에 도심 쪽을 기점으로 조정하여 주요 경유지를 명시하면서 오늘날의 면모를 갖추었다.
새문안길①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세종로사거리)~충정로2가 8-2번지(서대문로터리) 구간으로 폭 40m, 길이 1,590m의 8차선 도로 ② 서대문이 몇 차례 그 위치가 바뀌면서 현재의 강북삼성의료원과 경향신문사 사이에 새로 문은 냈다는 데서 유래. 또 옛 서대문을 닫힌 문이라 하여 색문(塞門)의 안길이라는 의미도 있다. 즉 新門·塞門의 안길에서 음과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③ 이 길은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명칭을 개편할 때 행정구역 이름이자 가로명으로 서대문정1·2정목이라고 이름 하였다가, 1946년 10월 1일 명칭을 바꿀 때 서대문로로 칭하였다. 1950년 3월 5일 신문로로 개칭되었으며,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로 새문안길로 변경되었다.
서초로瑞草路① 서초구 방배동 3007번지(동작대로)에서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서초동 1319-6번지(강남대로)에 이르는 폭 40m, 길이 4,200m의 8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지나는 서초구 서초동 동명에서 유래 ③ 1981년 1월 21 서울특별시공고 제14호에 의해 36개 새로운 가로명을 제정할 때 이름 붙여진 서초1로에서 비롯되었다. 이 때 서초1로는 반포대로에서 경복여자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역삼동 강남대로에 이르는 폭 40m, 길이 2,000m의 8차선 도로였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숫자 이름을 배제하여 서초로로 변경되었다. 이 때 서초로는 역삼1동 676-25번지에서 경복여자상업고등학교와 서초동 꽃마을을 거쳐 남부순환로와 교차하는 소라아파트에 이르는 폭 20~45m, 길이 3,590m로 기점과 종점을 반대로 조정하고 종점을 반포에서 남부순환로까지 1,590m 연장하였다. 이후 구간을 나누어 서초역에서 남부순환로 구간은 명달길로 이름 붙이고, 동작대로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서초로가 되었다.
선바위길① 과천 남태령네거리에서 우면동 선암로 인터체인지에 이르는 주간선도로 ② 이 길이 지나는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과 서초구우면동 일대의 선바위(선암) 마을에서 유래
세검정길洗劍亭길① 서대문구 홍은동 48번지(홍은사거리)에서 세검삼거리를 거쳐 종로구 평창동 산6-2번지(북악터널)에 이르는 폭 25m, 길이 5,200m에 이르는 4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지나는 옆에 세검정(洗劍亭) 정자가 있는 데서 유래 ③ 이 길은 1972년 11월 26일에 한양천도 578주년을 맞아 제정한 세검로(洗劍路)의 일부였다. 1984년 11월 7일, 지역성을 고려하여 북악터널을 기준으로 정릉길과 세검정길로 구분하였다. 이 때 세검정길은 북악터널에서 서대문구 홍제동을 거쳐 홍은사거리에 이르는 4,900m 구간이었다. 후에 연장되어 총 길이 5,200m가 되었다.
세종로世宗路①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고종칭경기념비전)에서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세종로 1번지(광화문)에 이르는 폭 100m, 길이 600m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길이다 ②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지명을 우리 고유의 명칭이나 역사를 빛낸 위인 등과 관련된 명칭으로 바꿀 때, 일제 때 명칭인 광화문통을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탄생지가 이곳에서 가까운 옥인동이기 때문에 세종로라 고침 ③ 역사적으로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건설할 때 너비 58자[尺] 규모로 뚫은 대로로서, 정부 관서인 6조(六曹)와 한성부 등의 주요 관아가 길 양쪽에 있다 하여 ‘육조앞’ 또는 ‘육조거리’라 부르기도 했고, 세종로 사거리의 해태 석상이 있다 하여 ‘해태앞’이라고도 했으며, 또 1902년(고종 39)에 세운 비전 때문에 흔히 ‘비각앞’이라고도 불렀다. 비전앞은 전국 국도의 원점이기도 한데, 서울특별시와 전국 각 도시 간의 거리를 표시하는 도로원표(道路元標)가 있어 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지로서의 의미도 겸하고 있다. 광화문 네거리 일대는 나즈막한 황토 언덕이 있다 하여 ‘황토마루[黃土峴]’라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광화문통(光化門通)’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옛 중앙청 정문에서 황토현 사거리까지의 길이 500m 구간을 도로로 지정한 뒤 세종의 시호를 따서 세종로라는 명칭을 붙였다. 도로 너비도 일제강점기에는 53m로 축소되었다가 1952년 3월 25일 현재의 너비로 확정되었으며, 1984년 11월 7일 가로명 제정시 세종로 사거리에서 중앙청까지로 기점 및 종점을 변경하고 길이도 현재와 같이 되었다.
왕십리길往十里길① 중구 신당동 251번지(한양중·고등학교)에서 왕십리로터리를 거쳐 성동구 성수동1가 671번지(성동교 남단)에 이르는 폭 30m, 길이 3,900m의 도로 ② 이 길이 지나는 성동구 왕십리동 동명에서 유래 ③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 고시 제1093호에 따라 중구 신당동 228번지(을지로7가)에서 성동구 행당동 196번지(왕십리로터리)에 이르는 왕십로로 지정되었다. 또 왕십리로터리에서 성동교와 광진교를 지나 천호동 426-1까지의 구간은 광장로(지금의 광나룻길)였는데, 1972년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고려하여 성동교 남단에서 광진교 북단에 이르는 구간이 다시 새싹길(지금의 광나룻길)이 됨에 따라 왕십로의 종점은 왕십리로터리에서 성동교 남단으로 연장되었다. 그 뒤 1984년 11월 7일 이 길이 지나는 왕십리동의 동명을 따서 지금의 가로명이 되었다.
용호로龍湖路① 용산구 원효로2가 112-4번지(남영역)에서 원효대교를 지나 영등포구 신길동 1351번지(여의교 남단)에 이르는 폭 30~35m, 길이 5,200m의 6차선 도로 ② 원효대교 북단 부근의 한강을 조선시대 용호(龍湖)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 ③ 1978년 6월 29일, 신길동 1407번지의 대방지하차도에서 원효대교를 지나 만초천 복개도로와 청파동을 거쳐 서부역에 이르는 5,000m 구간이 원효대로로 지정되었다. 1984년 11월 7일, 원효로와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가로명을 용호로로 변경하였다. 이 때 기점과 종점을 반대로 바꾸고 종점을 단축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월곡동길月谷洞길① 성북구 종암동 26-2번지(종암로)에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부속중학교를 거쳐 하월곡동 27-8번지(화랑로)에 이르는 폭 15m, 길이 1,150m의 2~4차선 도로 ② 이 길의 종점인 성북구 하월곡동 동명에서 유래 ③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처음 월곡동길로 이름 붙여졌다.
응봉로鷹峰路① 성동구 행당동 267번지(왕십리로터리)에서 응봉동을 거쳐 강남구 압구정동 464번지(성수대교 남단)에 이르는 폭 30m, 길이 3,300m의 6차선 도로 ② 매 모양의 응봉이 있는 성동구 응봉동 동명에서 유래 ③ 이 길은 성수대교 개통과 함께 1978년 서울특별시 공고 제277호에 따라 길이 2500m의 성수로로 제정되었다가, 1984년 11월 7일 노선이 응봉동을 거치므로 동명을 따서 지금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의주로義州路① 중구 봉래동2가 43번지(서울역)에서 독립문을 거쳐 서대문구 홍은동 450번지(홍은사거리)에 이르는 폭 35~40m, 길이 4,750m의 8차선 도로 ② 서울에서 의주까지의 일반국도 1번도로의 일부인 데서 유래 ③ 이 길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의주통이라 하였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에 서울역에서 적십자병원에 이르는 구간은 의주통에서 의주로로 변경되었다.
자하문길紫霞門길① 종로구 적선동 107-1번지(사직로)에서 자하문터널을 지나 홍지동 122-2번지(세검정삼거리)에 이르는 폭 25~30m, 길이 3,200m의 4~6차선 도로 ② 서울성곽 4소문 가운데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의 속칭인 자하문(紫霞門)에서 유래 ③ 원래 세종로1가(옛 중앙청)에서 홍지동 94번지(세검정삼거리)에 이르는 길이 너비 13∼15m, 3,400m의 효자로였으나, 1984년 11월 7일 가로의 연계성과 도로 너비가 다른 것을 감안하여 칠궁을 기준으로 효자동 방면의 효자로(추사로)와 자하문 방면의 자하문길로 나뉘었고, 1986년 7월 18일 창의문길이 지정되면서 적선동 66(체부동)에서 신교동삼거리에 이르는 추사로가 이 도로에 포함되었다.
제물포길①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서강대교 남단)에서 양천구 목동을 거쳐 신월동 410-1번지(신월I·C)에 이르는 폭 55m, 길이 8,000m의 10차선 이상 도로 ② 여의도에서 제물포로 향하는 길이라는 데서 유래 ③ 1988년 9월 8일에 처음으로 이름 붙여졌다.
태평로太平路①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세종로사거리)~중구 봉래동 2가 122번지(서울역)에 이르는 길로 폭 50m, 길이 1,600m이며 세종로와 이어진 간선도로로 강북에서는 세종로 다음으로 넓은 길이다. ② 남대문 서북쪽 현 대한상공회의소가 들어서 있는 부근에 태평관이 있었던 데서 유래 ③ 1912년 11월 6일 조선총독부고시 제78호 <조선시구개수예정계획>에 이 길을 노폭 27m로 정하고 이해 시공하였다. 1914년 6월에 간행된 <경성부명세신지도>에 태평통(太平通)으로 표기되어 그 이전에 개통된 것으로 보인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지명을 우리지명으로 바꿀 때 황토현사거리(세종로사거리)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1,009m 길이의 도로인 태평통을 태평로로 개칭하였다.
테헤란로① 강남구 역삼동 825-15번지(강남대로)에서 선정릉공원을 거쳐 송파구 잠실동 50번지(삼성교)에 이르는 폭 50m, 길이 4,000m의 10차선 이상의 도로 ② 1972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가 한양 천도 578주년을 맞아 이름없는 시내 59개 도로에 대한 가로명을 지을 때 삼릉로가 되었다가 1977년 서울특별시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의 자매결연을 기념하여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
풍납로風納路① 풍납동 340-3번지(강동대로)에서 영파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강동구 성내동 64-13번지(천호신사거리)에 이르는 폭 30~40m, 길이 1,260m의 8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지나는 송파구 풍납동에 풍납토성이 있는 데서 유래 ③ 1981년 10월 22일, 성내동에서 천호사거리를 거쳐 암사동아파트에 이르는 길이 3,600m, 너비 25~40m 구간에 처음으로 이름 붙여졌다.
한강로漢江路① 중구 봉래동2가 43번지(서울역)에서 삼각지로터리를 거쳐 동작구 본동 258-1번지(한강대교 남단)에 이르는 폭 40m, 길이 5,150m의 10차선 이상 도로 ② 이 길이 서울역에서 한강으로 가는 간선도로인 데서 유래 ③ 일제강점기에는 한강통(漢江通)이라 하였다가 1966년 11월 26일 현재의 도로명으로 확정되었다. 원래 동자동 43-1번지에서 한강로3가 65번지에 이르는 구간이었으나, 1981년 현재의 기점에서 한강로3가 140번지(한강대교)까지로 구간이 조정되어 길이 5.3㎞가 되었다가 1984년 다시 구간이 조정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남로漢南路① 한남동 산9-2번지(약수고개)에서 북한남삼거리를 지나 강남구 신사동 467번지(한남대교 남단)에 이르는 폭 30~50m, 길이 3,100m의 8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용산구 한남동을 지나고 한남대교로 이어지는 데서 유래 ③ 1939년 조선총독부고시 제757호에 의해 삼각지광장~한남동~신당동간 대로2류 9번의 폭 28m, 길이 4,820m와 동 23번의 한남동 地內 폭 15m 길이 700m 길의 일부였다. 1966년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에 의해 한강로1가 23번지 삼각지에서 한남동을 경유 신당동 374-12번지 약수동로터리에 이르는 폭 30m, 길이 5,000m를 한남로라 이름 붙였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기존 한남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삼각지에서 북한남사거리에 이르는 길은 이태원로(梨泰院路)로 개칭되고, 한남동 산9-11번지 약수동로터리에서 한남대교 남단에 이르는 예전의 한남동지내 대로2류 23번에 해당하는 길을 연장하여 한남로라 새로 이름 붙였다.
훈련원로訓鍊院路① 종로구 종로5가 79-1번지(종로)에서 을지로5가를 거쳐 장충동 197번지(장충단공원)에 이르는 폭 40m, 길이 1,500m의 8차선 도로 ② 이 길이 지나는 방산동에 조선 후기 군사들의 훈련을 관장하던 훈련원이 있던 데서 유래 ③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공고 제1093호로 중구 쌍림동 106번지에서 종로구 혜화동 132번지(혜화동로터리)까지 2,530m 구부러진 구간으로 대학로로 제정되었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23호로 종로5가사거리를 기준으로 대학로 구간을 줄여 남쪽 구간을 분리하여 훈련원로로 이름 붙였다.
흥인문로興仁門路① 종로구 종로6가 69번지(동대문)에서 동대문운동장을 거쳐 중구 광희동2가 319번지(광희동오거리) 구간 폭 40m, 길이 800m의 8차선 도로 ② 서울성곽 동대문의 본래 이름인 흥인문에서 유래 ③ 1936년「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조선총독부고시 제722 호와 1939년 9월 18일 조선총독부고시 제757호로 동대문~을지로6가 광장의 길을 대로로 구분하여 폭 35m, 연장 450m의 길을 내기 위해 계획가로로 발표, 1958년에 동대문~을지로6가간에 포장공사를 하고 경계석 설치,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로 중구 을지로7가 1번지(서울운동장 앞)에서 장충동·타워호텔을 거쳐 신당동 374-12번지(약수동고개 삼거리)까지 구간을 장충로로 이름 붙임,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로 도심 구간의 세분화와 교통 흐름을 감안하여 장충로를 광희동오거리에서 장충단길과 흥인문로로 나누면서 흥인문로의 이름이 생겼다.